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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염원하며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올해로 3년째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고향이 북한에 있는 개성이시다. 외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외할아버지의 어머니를 개성에 남겨 두고 남한으로 넘어 오셨다. 그래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자주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고 한다. 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슬픔을 잘 모르는 나는 엄마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외할아버지의 한과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 왔다.
지난 달, 우리 가족은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 전망대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떠난 가족여행인지라 가벼운 마음과 함께 기대감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통일 전망대로 들어가는 절차는 꽤 복잡했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행증을 발급받아 군인 아저씨들께 보여주어야 했다. 총을 들고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는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통일 전망대에 도착하니 하얀 건물이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전망대의 꼭대기에 올라가니 해금강과 북한 땅이 선명하게 보였다. 넓고 푸른 바다 해금강을 끼고 남한 초소와 북한 초소가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치하고 있었다. 또 지금은 끊겨진 동해 북부선 철로 길도 보였다. 비무장 지대와 휴전선 철책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나와 우리 가족이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북한 땅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군데군데 설치해 놓은 철조망이 우리나라 분단의 현실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전망대를 내려와 6.25 전쟁 체험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그 곳에서 6.25 전쟁의 역사에 관한 영화를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한민족기리 서로 총을 쏘아 대고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죽이는 장면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외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의 어머니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 모두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전시관 안에는 6.25 전쟁 때 사용되었던 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기들과 전사자들의 유골도 있었다. 찢어진 군화와 철모, 낡은 군복들을 실제로 보고 나니 ‘전쟁이란 정말 끔찍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평화와 행복이 새삼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결국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그리움과 한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처럼 이산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몇 년 전 TV에서 남, 북한 가족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다른 가족들의 생사를 묻기도 했다. 그 때는 그 장면이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이산가족들이 끊어진 기차를 타고 그리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통일전망대를 다녀온 후 큰애가 학교 홈피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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