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무게
들녘에 선 벼는
아직 말이 없지만
그 잎 끝에 맺힌 이슬은
하루를 견디는 기도로 빛난다
저 고운 초록이
몇 번의 비에 쓰러지고
몇 번의 바람에 꺾이면서도
결국 익어간다는 걸
우리는 안다
논 한 자락
그 속에 숨은 땀방울이
아무도 모를 때부터 흘렀다
해가 뜨기도 전
발목까지 찬 물을 헤치고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
한 톨의 쌀이 되기까지
이슬은 이슬이 아니었다
노동이었고
기도였으며
묵묵한 기다림이었다
오늘, 벼가 선 그 자리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다.
농사는 땅이 짓지만
사람이 견디는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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